과천국립현대미술관 공간변형프로젝트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개관 30주년을 맞이하여 건축가들에게 새로운 공간을 제안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오래된 개관을 자축하는 의미에서가 아니었습니다. 과거에는 우리나라의 중심 격인 미술관이었는데 서울에 큰 미술관들이 많이 들어서면서 관람객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이제 미술관의 미래를 다시 생각해야 보아야 할 시점에 다다라, 많은 건축가들의 의견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미술관이 죽으면 뭐가 될까?”

 

 

푸하하하프렌즈_제출작품

 

사후의 미술관 – 푸하하하프렌즈

공간 변형 프로젝트: 상상의 항해

공간 변형 프로젝트: ‘상상의 항해전’은 과천관 내,외부 공간을 무대로 장소의 의미를 상상하는 건축 프로젝트다. 1969년 경복궁에서 출발해 2013년 서울관 준공까지 미술관의 긴 여정에서 과천관은 국립현대미술관 본관으로서 역할을 지속하고 있다. 1986년 과천관 준공을 계기로 국립현대미술관은 전문 수장고와 대형 전시장을 마련하여 이를 기반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미술관으로 더욱 도약하였다. 건축가 김태수가 설계한 이곳은 많은 것들이 빠르게 변하는 역동적인 한국 사회에서 드물게 본 모습을 오래 간직해 온 공공 건축물이다. 반면,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와 미술관의 역할은 건축의 실험적인 도전과 대안적 미래를 상상하게 한다.

과천 이전 30주년을 맞이해 국립현대미술관은 이 의미있는 날을 축하받기 위해 건축가들을 초대하여 특별한 작업을 요청하였다. 과거 미의 신전이라 불리는 미술관에서 우리는 오늘날 어떤 새로운 장면들을 상상할 수 있을까? 30년 동안 엄숙하고 견고한 모습으로 자리잡은 과천관을 어떻게 해석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이 프로젝트는 미술관 건축의 생애 그리고 그것의 지속가능성을 다시 생각해보고자 기획되었다. 더불어 지난 30년이 아닌 앞으로의 30년을 꿈꾸고 상상하기 위해 과천관 공간을 하나의 사이트로 삼아, 건축가 30팀이 그려낸 다양한 상상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이는 과천관 내외부 공간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건축적 개입이 되거나, 미술관 건축 시스템에 대한 연구일 수 있다. 혹은 역설적으로 기존 구조와 가치를 존중하고 지키고자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상상의 항해’는 과천관의 현대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활력을 높이는 시각 이미지를 매개로 건축에 대한 의미를 제고하는 실험이 될 것이다. 동시에 과천관을 유연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건축의 특성을 고민하여 미술과 건축 사이 여러 접점에 대한 생각을 관객과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한다.
이번 전시는 별도의 온라인 전시 플랫폼(www.imaginemmca.org)을 제공해 참여 건축가들의 작업뿐만 아니라 과천관 건축과 관련된 과거 이미지, 관련 문헌, 영상 등 콘텐츠 아카이빙을 선보인다. 본 프로젝트와 연계하여 작가 인터뷰, 미술관 전문직 인터뷰, 현장 답사, 라운드 테이블, 시민 공모프로그램 등 미술관 건축을 둘러싼 다양한 관계를 재해석하는 풍부한 연계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3층 통로

온라인 전시:
www.imaginemmca.org

출품 작가(30팀):
강예린+이치훈+이재원(SoA)
강현석+김건호+정현(설계회사)
권형표+김순주(바우건축)
김경은+서을호(서아키텍스)
김인철(아르키움)
김장윤(아티클 아키텍처 오피스)
김찬중(더시스템랩)
나은중+유소래(네임리스 건축)
나탈리 드 브리스+이교석(MVRDV)
디디에르 피우자 파우스티노(스튜디오 디디에르 파우스티노)
마르코 카네바치+양예나(플라스틱 판타스틱)
민현준(건축사사무소 엠피아트)
박천강(박천강 건축사무소)+구보배
분섬 프렘타다(방콕 프로젝트 스튜디오)
서승모(사무소 효자동)
스티븐 홀(스티븐 홀 아키텍츠)
시모네 카레나+마르코 브루노(모토엘라스티코)
이반 캅데빌라+빈센트 이보라(플레이스튜디오)
이정훈(조호건축)
장영철+전숙희(와이즈 건축)
장윤규(운생동)
조병수(조병수건축연구소)
지정우(유경건축)
최문규+가아건축
최춘웅(CCA)
파블로 카스트로+제니퍼 리+강신국(오브라 아키텍츠)
페이 주(스튜디오 페이-주)
플로리안 아이덴버그+징 리우+일리아스 파파조르지우+강승현(SO–IL)
한승재+한양규+윤한진(푸하하하프렌즈)
황두진(황두진건축사사무소)

주최: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와 지금의 나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 미술관에 전시된 수백년 전 예술가의 거친 붓터치를 보고 우리는 작가가 느꼈을 감정과 열정 등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가 있다. 작품이 만들어졌을 당시의 작자와 지금의 관람자 사이에서 시간의 간극은 존재하지 않는다. 작품은 바로 우리의 앞에서 말하고 있으며 그것은 언제나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으로 전달되고 있다. 이를테면 모나리자는 예전에 있었던 어느 여인의 사진이 아닌 지금 미소를 띄고 있는 여인의 모습으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는 과거 어느 신화의 기록이 아닌 아직까지 손가락이 닿을락말락 한 찰나의 연속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작품은 박제된 물건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살아 숨쉬고 있다고 믿어진다. “더 포괄적인 표현으로 예술은 영원히 살아 있다고 믿어진다.”처음 미술관의 생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미술관의 삶보다는 죽음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았다. 미술관의 생애에 죽음은 어떤 식으로 찾아올까? 미술관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일까? 그런데 무엇보다도 미술관이 죽음을 맞을 수도 있는 연약한 대상인지가 가장 궁금하였다. 예술의 영속성 때문인지 아니면 예술의 순수성 때문인지, 미술관도 미술 작품처럼 모든 시대를 관통하며 영원히 살아있을 강한 주체로만 생각되었다. 미술관은 과거의 이야기를 지금까지 전해주었듯 지금의 이야기를 미래로 전해주어야 하는데, 과거와 미래 사이에는 미술관이 사라지거나 다시 생기거나 할 어떠한 경계가 없다고도 생각되었다. 그래서 미술관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것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미술관을 비롯한 모든 건물의 생애는 우리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죽음으로 가는 과정속에 있다.  건물은 지어지고,언젠가는 허물어지게 되어있다. 현대사회에서 건물은 좀 더 복잡한 여러 이유로 서둘러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많은 건물들이 모양을 바꾸거나 새로운 기능을 갖는 것을 택하지만, 그 과정에서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해 도시와 함께 병들어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미술관 건물도 건물을 둘러싼 복잡한 상황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미술관도 살아남기 위해선 여러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접근성 문제로 점점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고 있는 과천 국립미술관의 경우에도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미술관 건물의 변화를 모색중이다. 미술관이 갑자기 주택이 되고 쇼핑몰이 되는 상상을 해보았다. 혹은 현대의 디자인에 맞게 어느 부분을 바꾸는 시도를 해보았다. 그리고 곧바로 이런식의 변화가 이 장소를 아프게 하는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과거 권위의 디자인으로 대변되는 근대 미술관 건물은 권위적인 방향으로 그 가치가 있다. 미술관의 미래를 생각할 때에는 용도와 디자인 외에 이 건물이 가지는 권위에 대해 좀 더 생각을 해보아야했다. 그것이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아무도 찾지 않는 미술관을 꺼내놓고 기념하는 권위적인 방식이라면 보는이의 입장에서도 미술관의 입장에서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는 용도를 변경하거나 모양을 바꿈으로서 미술관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 대신, 차라리 장엄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마초적인 방법을 상상해보았다.

우리는 기존의 건물을 매장하고 그 위에 시대에 맞는 새로운 어휘를 신축하는 다소 파격적인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시대를 초월하며 끊임없이 변화해가는 하나의 미술관 대신, 각 시대를 대표하는 여러 개의 미술관이 순차적으로 파묻히고 새로 지어지고를 반복하며 시간의 경계를 만들어가는 방식인 것이다.  당장 기존의 미술관이 흙 속에 묻히면 새로 지어질 미술관은 관람객 수에 맞는 작은 규모로 새로 계획 될 예정이며, 이 시대를 대표하는 디자인으로서 솔직한 구조와 저렴한 재료가 선택 될 예정이다. 그리고 그 건물 역시 나중에는 그 모습 그대로 땅에 묻히게 될 것이다.

미술관은 시간이 지나면서 높은 산이 되어가고 그럴수록 지하는 점점 더 깊어진다. 이는 우리가 한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던 예술의 죽음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곳의 예술품은 깊은 땅 속에 묻혀 고이 잠들어 있다. 언제나 준비된 듯 반가운 얼굴로 응대하는 지금의 미술과는 다른 모습일것이다.

실제로 과거에 이러한 개념의 미술관이 있었다. 이집트의 미라미드가 그러했다. 그들의 경우엔 더욱 단호해서 미로를 만들고 문을 숨겨버렸다고 한다.

 

 

이곳에서 다른 건축가들의 작업을 구경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imaginemmca.org/proposals/category/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