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이 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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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RIDOR PROJECT”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어정쩡한 복도공간을 대상으로 새로운 전시공간 혹은 휴식공간을 제안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미술관과 복도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복도는 언제부터 복도가 되었고. 겔러리는 언제부터 겔러리가 되었을까요?

우리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복도를 생각하기 이전에 모든 복도와 겔러리의 출발점이 어디인가부터 찾아보았습니다.

 

 어머님이 누구니?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술관을 둘러보며, 우리는 전시공간의 변화를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근대 이전의 미술관은 미술관보다는 미술품에 더 초점이 맞춰 있었습니다. 각각의 전시실은 밀폐된 형태로서 정확히 구획되어 있었으며, 비슷한 규모와 비슷한 모양의 전시실이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점차 시간이 지나, 근대를 거치며 미술관은 좀 더 자유로운 형태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미술관에서 전시실이라는 개념은 크게 중요하지 않아졌습니다. 전시실의 구획은 사라지고, 미술작품의 배치도 비교적 자유로워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커다란 공간 혹은 단순한 동선 속에서 미술품은 비교적 자유로운 방법으로 전시되기 시작했습니다.

전통적인 관람방식에서 미술작품은 일종의 목적지와 같습니다. 전통적인 접근방법에 따르면 사람들은 작품을 보기 위해 미술관을 찾고, 네모난 전시실은 작품을 위해 존재하고 있습니다. 반면 요즘의 전시는 자유로이 공간을 배회하다 만나는 하나의 사건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미술관 계획은 모든 전시와 공간을 아울러 관람자의 종합적인 여정을 고민하는 방식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1987년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연속되는 길 안에서 전시를 관람하는, 당시로서는 진보적인 전시방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복도는 건물 전체를 아우르며 길게 이어지고, 미술품은 복도 벽면을 따라 길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미술관 내부엔 복도식 전시실과 함께 격실구조의 전시실도 함께 운영되고 있는데, 이는 폐쇄적인 전시의 기획에도 용이하도록 한 설계자의 의도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하지만 관람의 여정에 감각적 공백을 불러오는 지점이 있습니다. 바로 넓은 복도와 격실구조의 전시실이 공존하는 구간입니다. 커다란 두 전시공간 사이에서 관람객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며, 이 구간에서 복도는 전시공간이 아닌 단순한 통로로서만 존재하게 됩니다. 메인공간도 서브공간도 될 수 없는 복도는 어쩌면 좋을지 모를 애매한 공간으로 남아있습니다.

어중간한 포지션의 이 공간이 어떻게 사용되면 좋을까요?

우리는 오래전 수도원의 도면을 참고했습니다. 건물의 복도에 해당하는 부분에 갤러리라는 실명이 적혀 있습니다. 또한 건물의 내부정원을 마주한 공간엔 CORRIDOR라는 실명이 적혀 있습니다. 예전에 복도는 전시와 휴식이 함께하는 공간이기도 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두산백과사전 회랑 [ corridor , 回廊 ]

사원(寺院)이나 궁전건축에서 주요부분을 둘러싼 지붕이 있는 긴 복도로, 중정(中庭)을 구획하거나 신성한 지역을 둘러싸기 위하여 설치하였는데, 특히 르네상스 이후에는 저택 ·궁전 ·공공건물 등의 장대한 건축을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정원을 둘러싼 형식이 사용되었다.

CORRODIOR 프로젝트에서 우리는 휴식과 전시라는 두가지 목적을 모두 충족할 수 있는 복도를 계획했습니다. 물론 현재의 복도도 두가지 목적에는 모두 부합할 수 있겠으나, 지금보다 더욱 편안한 휴식과 더욱 몰입할 수 있는 전시를 가능케 만들고 싶었습니다. 동시에 복도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복도는 길입니다. 길은 발이 밟고 지나간 자리에 생겨나기도 하고, 틈이 갈라져 생기기도 합니다. 심지어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더라도 형태로서 존재하기도 합니다.

 

복도라는 하나의 공간에 휴식과 전시라는 복합적인 기능을 담기 위해 우리는 길이 생겨나는 다양한 방법을 혼합하기로 했습니다. 임의의 도형이 내부와 외부를 나누게 됩니다. 도형의 내부는 햇빛이 비추는 휴식공간입니다. 도형의 외부는 햇빛이 들지않는 전시공간입니다.

 길은 발이 밟고 지나간 자리에 생겨나기도 하고,

 

 틈이 갈라져 길이 생기기도 합니다. 

길은 도형을 관통하며 지나갑니다. 복도는 시각적으로 연속된 공간이기도 하며, 울타리에 의해 규정된 공간이기도 합니다. 전시실과 길은 명확히 나누어져 있으면서 동시에 난잡하게 뒤섞여 있습니다. 관람객은 나름의 방식으로 길을 정할 수 있으며, 다양한 경험을 가능케합니다.

 

 

 

CORRIDOR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스스로 정한 두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결과물로서 ‘작품’이 아닌 ‘공간’을 계획할 것
  2. 기존 건물의 흐름을 막는 급격한 변화는 지양할 것.

 

복도를 재해석하는 우리의 낯선 시도가 정제된 미술관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길 바랐습니다.

평면은 다소 복잡해 보이지만 우리의 의도는 명쾌합니다. 정적인 휴식공간과 구겨진 전시공간의 공존입니다.  도형의 안쪽과 바깥쪽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다릅니다. 햇빛과 어둠, 반듯함과 복잡함, 정적인 풍경과 동적인 풍경. 우리가 계획한 것은 이 모든 모순되는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는 하나의 길입니다.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전시와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휴식공간이 관람객들에게 뜻하지 않은 놀라움을 선물하길 기대해봅니다.

 

 

PART. 2

국립현대미술관의 관장 마리 선생은 한글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위의 내용을 영어로 PT를 준비했습니다. 굳이.. 

그런데 너무 열심히 준비한 탓에 힘들게 외운 대사를  모두 까먹고…PT는 프리스타일이 되어버렸습니다.

“푸하하하는 우리와 함께 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작품은 세상에 공개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