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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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여행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뜨거운 햇볕아래 점점 목이 말라오고 이대로는 한걸음도 더 걸을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곳은 사막도 아니고 무인도도 아니었다. 우리는 숙소 근처에 있다는 댐을 찾아 산책을 떠났을 뿐인데, 이렇듯 심각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 것이었다. 처음 숙소를 떠날 때 물 대신 맥주를 가져온 것이 화근이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곳은 사막도 아니고 무인도도 아니었다. 탈수 증상을 염두해 둘만한 여정이 아니었다. 우리는 갈증을 달래기 위해 연거푸 맥주를 마셔댔고, 그럴수록 갈증은 더욱 심해져만갔다. 돌아가기도 더 나아가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정말 우스운 상황이지만, 이러다 정말 농담처럼 죽을수도 있다고 우리는 생각하고 있었다.

어쨌든 살기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해보았다. 우선 과일의 신맛을 떠올려보았다. “얘들아 저기에 레몬이 있어!” 신맛을 떠올려서 입에 침이 고이게 하는, 예전에 조조가 병사들에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것과 비슷한 방법이었다. 야생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녀석은 자갈을 입에 물고 걷기 시작했다. 베어그릴스가 사용한 방법인데, 자갈을 물고 걸으면 입에 침이 고여 갈증이 해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아쉽게도 어느 방법도 괜찮은 효과를 볼 수는 없었다.

댐에 거의 다다를 즈음 어디선가 우렁찬 물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산 속의 물을 마을로 내려보내주는 오래된 수로가 지나고 있었다. 단숨에 물을 들이키고 싶었지만, 생수가 아닌 물은 마셔본 적 없는 우리였다. 우린 대신 수로에 몸을 담궜다. 이토록 뜨거운 날씨속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얼음 물이 흐르고 있었다. 순식간에 입술은 파란색으로 변해버렸다. 물을 마신것도 아닌데, 신기하게 갈증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는 튕겨나오듯 수로에서 빠져나왔다. 금새 추위에 질린 우리들은 뜨거운 바위에 누워 몸을 말렸다. “도대체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 입술이 얼어 붙어서인지 입 속에 자갈을 물고 있어서인지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다.5년 전 우리는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하나의 회사, 그리고 세명의 건축가로서 홀로서기를 계획하면서, 세상에 우리가 할 일은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길고 긴 시간 일 없이 빈둥거릴 것에 대비해 또 다른 대안을 계획해 놓았었다. 퇴직금이 바닥나기 전에 히말라야의 설원을 보고오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또 다른 대안’을 실행에 옮길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아주 작은 규모의 일이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일을 시작 할 수 있었고, 끊임없이 좋은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세 명으로 시작한 우리의 작업실은 어느덧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열 명이 함께하는 회사가 되어있었다. 그동안 궂은 일도 많았고 재밌는 일도 많았다. 미쳐 다녀오지 못한 우리의 여행은 수많은 일들 사이 배부른 아쉬움으로 남아있었다. 올해 여름 출장을 핑계로 우리는 프랑스 남부에 머물며 가장 우리다운 여행을 즐겼다. 그날 고작 댐을 보고 돌아 온 차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모습을 하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온 몸은 젖어있었고, 흙이 묻어있었고, 입엔 자갈을 물고있었다. “너희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니?” 놀란 호스트가 우리에게 물었다. 우리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아 그냥 웃었다. 산책을 다녀온 반나절이 아니고 마치 5년간 무슨일이 있었는지 묻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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