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te": "2020/06/25"
  • "title": "집 안에 골목"

2001년부터 연희동에 살았다. 2013년에 처음으로 연희동 꼭대기에서 주택 리노베이션 공사를 진행했다. 공사를 진행하는 동안 인근 주민들에게 해로운 시공업자로 낙인 찍혔다. 휴일에 동네에서 민원인을 만날까 두려워 편의점도 먼 곳으로 다녔다. 두 번 다시 동네 프로젝트는 맡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2018년 두번째 동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번엔 해로운 디자이너 역할을 했다. 난해한 디자인때문에 시공기간이 길어졌다. 그 와중에도 욕심을 버리지 않아서 현장소장이 우울해했다. 풍화작용에 너덜너덜해진 공사 가림막이 동네를 지저분하게 만들었다. 클라이언트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설명하고 싶었다.

-월간 SPACE  630호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1. 왜 안과 밖은 달라야 하는가?

 

연희로 11마길은 연희동 오래된 주택가를 지나 연희동의 뒷산(궁둥산)에 이르는 산책로의 영역이다. 골목길과 뒷산 사이를 가로지르는 여래개의 계단 역시 연희로 11마길에 포함된다.

넓은 계단을 사이로 집들이 마주한 이 길의 스케일은 흡사 오래된 궁전 혹은 호텔의 그랜드 스테어를 연상케 한다. 20여년간 연희동에 살면서 줄곧 이 장소가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기대하기론 이 좋은 계단에 앉아 인사도 나누고 책도 읽고 작은 파티도 열었으면 좋겠는데, 계단은 그럴싸한 가능성만을 품고 있을 뿐. 그런 것을 기대하기에 요즘 시대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계단의 가능성을 집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집 안에서 길이 계속되길 바랐다. 두개의 벽을 세우면 그 사이는 길이 된다. 건물과 담 사이 골목이 있고 벽과 벽 사이 골목이 있다. 집과 집 사이에 넓은 계단이 있던 것처럼 방과 방 사이에 넓은 계단을 배치했다. 집의 크기에 비해 다소 넓은 계단은 이 집에서 가장 밝은 장소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가끔씩 계단에 앉아 책을 읽는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다리를 건너는 재미도 있어 집 안은 아무리 봐도 골목이다. 애초부터 품은 궁금증은 이것이었다. ‘왜 안과 밖은 달라야 하는가?’ 집의 안쪽도 여전히 연희동인데 말이다.

 

 

 

 

 

 

 

 

2. 건물의 행동반경은 어디까지 인가?

 

춤은 사람을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춤은 몸을 실제보다 확장된 것처럼 보이게도 하며,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사물들과 연결된 것처럼 보이게도 한다. 몸 안에 갇혀 사는 딱한 신세의 인간들은 춤을 통해 몸을 벗어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표현한다. 빠르게 움직이며 빈 공간을 누비기도 하고, 두 팔을 벌려 빈 공간을 품기도 한다. 때로 다른 신체 혹은 물체와 몸을 연결시키기도 한다. 춤을 통하면 벗어날 수 없는 몸의 영역이 조금 연하게 변화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발버둥에도 사람은 결국 몸을 벗어날 수 없는데, 이 슬픈 현실이 춤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 건축의 몸부림은 조형을 통해 표현된다. 몸부림치는 건축은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땅이 아닌 하늘을 품는다. 건물에서 빠져나온 구조체가 지형, 구조물 등 건물이 아닌 것과 연결이 되기도 한다. 때로 건축에서 보여지는 유약하고 불안정한 구조는 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건축의 강력한 의지이기도 하다.

건물의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까지, 건축의 안과 밖 사이 영역에 머물며 사람은 여러 감각을 느끼게 된다. 생각보다 거대한 구조물을 마주하며 긴장감을 느끼기도, 건축의 두 팔 아래서 미처 생각지 못한 포근함을 느끼기도 한다. 건물이라는 단어가 건축이라는 단어에 비해 무언가 결여된 듯 느껴진다면, 그것은 몸이라는 단어가 춤이라는 단어를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는 이유와 같다. 건축은 건물과 건물의 행동반경을 포함한다.

 

 

 

 

 

 

 

 

 

 

 

Dimitris Papaioannou 작업 since she (dimitrispapaioannou 홈페이지)

 

 

 

 

 

3. 보이는 것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주택은 아파랏체가 2년 먼저 설계한 벽돌 건물과 나란히 서있다. 같은 흐름 안에서 같은 재료를 사용한 두 건물이지만 한 건물은 매끈하고 한 건물은 거칠어서 무척 다르게 보인다.

현대 사회에서 시각은 모든 감각들 중 가장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산책중인 강아지가 가로수에 코를 갖다 대고 한참을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은 한참동안 사진을 들여다 본다. 사람은 시각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는다. 시각은 기록에 용이하며, 냄새와 질감 등 다른 감각들에 비해 객관적인 정보의 전달이 용이하다. 이러한 장점들과 더불어 시각매체의 놀라운 발달이 시각에게 우월한 지위를 수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시각은 그것의 압도적인 의존도에 비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그다지 무겁지 않다는 점이 흥미롭다.  juhani pallasmaa는 그의 저서 the eyes of skin에서 시각은 대상화의 감각임을 밝힌다. 청각과 후각 등 몸의 다른 감각들이 몸 속으로 걸어 들어와 내 몸을 휘젓는 것과 다르게 시각은 관찰자를 대상에게서 분리시킨다. 보이는 것은 실질적으로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소음과 악취에 비하면 못생긴 것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질감은 절대로 내 것이 될 수 없는 감각인 시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일종의 수법이다.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머릿속으로 걸어 들어오는 활자처럼, 질감은 어떤 경험적 데이터를 포함하고자 한다.  질감을 통해 건물의 부가적인 정보를 상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질감은 주택의 탄생과정을 왜곡시킨다. 거친 질감은 벽돌을 쌓아서 만든 게 아닌, 형틀에서 뜯어낸 것으로 보이게끔 유도한다. 혹은 높은 곳에서 굴러 떨어져 이가 떨어져 나간 것처럼 보이게끔 한다. 집 안에 골목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발생된 것처럼 느끼게끔 한다. 

 

 

 

 

 

 

 

 

 

 

 

 

 

 

 

 

 

4. 벽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문은 언제나 극단적인 대답밖에 내놓지 못한다. 문이 열려 있다고 해서 무턱대고 들어와도 좋다는 신호는 아니며 문이 닫혀 있다고 해서 꼴도 보기 싫다는 신호는 아니다. 그런데 문을 열어놓으면 어딘가 불안하고 무언가 세어 나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닫혀 있는 문을 보면 왠지 답답하고 서운한 감정까지 든다.

벽은 이곳과 저곳을 나누기 위해 세워진다. 딱딱하고 얄팍한 그것을 세우면 반드시 한 쪽은 어두워지며 동시에 이쪽과 저쪽이 좁아지게 된다. 언뜻 무미건조해 보이는 이 구조체는 언제나 길을 막고 서서 겉보기와는 다른 이야기를 속삭이는데, 그 의뭉스러운 성격이 무척 얄미운 것이다. 그 목소리는 아주 작고 가늘어서 잘 들리지도 않는다.

벽의 스케일을 극대화하면 벽의 이야기를 크게 들을 수 있다.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을 가로지르는 긴 벽은 한쪽으로 기운 힘의 우위를 이야기한다. 남한과 북한을 가로지르는 철조망은 서로를 향한 앙상한 적대감을 이야기한다. 영역을 나누기 위한 목적만으로 세워지는 순진무구한 벽은 세상에 없다. 벽이 그럼에도 꼭 필요한 이유는 문이 필요한 이유와 같다. 공간은 적당히 나누었을 때 사용하기 편리하기 때문이다.

때로 벽은 언어를 순화시키기 위해 정체를 숨기기도 한다. 마트에선 상품을 분류하기 위해 아주 많은 구획을 두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벽이라기보다 진열장으로 인식한다. 다리는 자연을 가로질러 내놓은 인위적인 구획이지만 대게는 그것을 벽이라기 보다는 길로 인식한다. 하나의 벽은 이곳과 저곳을 가르는 역할밖에 하지 못하지만 두개의 벽을 세우면 그 사이는 길이 된다.

 

 

 

 

 

 

 

 

 

 

 

 

 

 

 

 

 

 

 

 

 

 

 

 

 

 

 

 

 

 

 

 

 

 

 

 

 

 

 

 

 

 

 

 

 

 

 

 

 

 

 

 

 

 

 

 

 

 

 

 

 

 

 

 

 

 

 

 

 

 

 

 

 

 

 

 

 

 

 

 

 

 

 

 

 

 

 

 

 

 

 

 

 

 

 

 

 

 

 

 

 

 

 

 

 

 

 

 

 

 

 

 

 

 

 

 

 

 

 

 

 

 

 

 

 

 

 

 

 

 

설계: 푸하하하 프렌즈 (한승재 한양규 윤한진 박혜상 온진성)

시공: 라우건설

구조설계: 센구조

기계  전기 설계: 하나기연

가구: 바이빅테이블

조경: 에이트리

목공: 신상만 

촬영: @Rohspace 노경